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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버 칼럼 연재/수중생물 도감

[수중생물도감] 바다 최강의 포식자, 향유고래



[수중생물도감] 바다 최강의 포식자, 향유고래


 지난번 수중생물도감 포스팅에서 가장 큰 고래인, 대왕고래에 대해 알아보았다. [대왕고래 포스팅 클릭]
 그렇다면, 고래 중 가장 강한 고래는 무엇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히 의견이 분분한데, 앞으로 상당기간 소개 할 고래 관련 포스팅들을 보고 판단은 여러분이 해보길 바란다.


 오늘 소개 할 고래는 향고래다.
 우리에겐 향유고래라는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고래다. 흔히 바다의 최강보스, 최종병기 등으로 불리우는 자타가 공인하는 가공할만한 녀석이다.




 ■ 향고래 ( 향유고래 )

 향고래, 향유고래 또는 말향고래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향고래는 이빨고래류 중 가장 큰 종이다.   이빨을 가진 동물로는 공룡 리오플레우로돈을 제외하면 지구 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종보다도 크다.  머리에 밀랍으로 가득찬 경랍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 때문에 거대한 사각형 머리가 특징적이다. 




 그 특유의 머리 모양 때문에 각종 창작물에서 묘사되는 고래그림,일러스트는 돌고래, 범고래와 함께 향유고래의 머리 모양을 모티브로하고 있다.  흔한 유선형이 아니라 앞이 두툼한 사각형이라 마치 핵잠수함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얼핏 보면 귀여운 외모지만 막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는 것과 닮았다.







 향고래를 바다의 최강보스로 느끼는 또 하나의 이유는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에 나온 모비딕 (맞다 그 모비딕이 향고래다 ) 때문이다. 소설에서 흉폭하게 묘사되는 것이 사람들에게 큰 인식을 미쳤는데,  실제로 향고래가 온순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설에 묘사된 것 만큼 흉폭하진 않다. 



■ 향? 고래 이름의 유래

 바다의 최강보스,포식자라는 이름과는 달리 이름은 귀욤귀욤하다. 향유고래, 향고래 뭔가 초식남 같은 이름이지만,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연유에는 향고래의 머리 쪽에 있는 기름 때문이다. 향고래의 머리에는 기름이 있는데, 이는 경뇌유, 혹은 향유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향고래라는 이름보다 향유고래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이유다. 이 기름이 미끄럽고 끈적해서 정액같다 하여 정액고래라는 의미로 영어이름이 Sperm Whale 이다. ( Sperm = 정자 ) 



 향고래(향유고래)의 기름은 등화용이나 윤활유로 질이 좋아서 예로부터 가장 많이 포획된 고래  중 하나이며, 이름 자체도 고래기름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기름 외에도 내장 안에 덩어리처럼 몰려있는 분(powder,糞)은 용연향(龍延香)이라고 불리며,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쌀 정도로 귀하게 취급되는 향수의 원료다.  용연향은 주로 위장 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남은  대왕오징어의 주둥이 등 찌꺼기가 뭉친 것인데, 최대 152kg에 달하는 큰 덩어리가 발견된 적이 있다. 이 용연향 때문에 향유고래를 말향고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심지어 향고래의 똥은 바다의 이산화탄소를 묶어 지구온난화를 막는다고 한다. 1마리당 자동차 2~3대 분량의 이산화탄소 억제효과가 있다고 한다.  여러모로 쓰임새가 많은 고래다. 



 ■ 향고래의 크기

 바다 최강 보스라 하여도 대왕고래에 비하면 그 크기는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고래보다는 큰 편에 속한다. 크기에서 오는 가공할 전투력을 무시할 수 없다. 향고래의 몸길이는 평균 수컷 17m-21m, 암컷 18m, 몸무게는 수컷 35-74t, 암컷 20-36t으로 수컷의 크기가 더 크다. 보통 수컷이 암컷의 두배 크기! 

가운데 Sperm Whale , 코끼리와 비교하면 코끼리가 애기



 골격을 보면 외관 특성 답게  머리뼈 쪽이 긴다. 실제에 비하면 정작 뼈 부분은 빈약한 편이다. 이유는 위에 언급했듯이 머리에 기름을 채워놓는 경랍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향고래의 모양과 특징

 향고래는 이빨고래라고 하지만 이빨은 다 자란 수컷의 가늘고 긴 아래턱에 20-28개의 큰 이빨만 있고 위턱의 이빨은 퇴화되어 작아져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게다가 암컷은 다 자라고 나서도 이빨이 없다.  이때문에 이빨의 용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향고래의 주먹이인 오징어를 먹는데 이빨이 꼭 필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향고래 수컷끼리의 싸움에 쓰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아래쪽에만 이빨이 자라있다. 

힝~ 향고래찡 안타깝다



 향고래는 온몸이 회색이나 배쪽에 담색의 얼룩점이 있는데 몸빛깔은 나이와 더불어 흰색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머리는 성장에 따라 커져서 몸길이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게 된다. 뇌는 무게가 8kg 정도이다. 등지느러미는 없지만 파도 모양의 피부돌기가 있다. 가슴지느러미는 몸에 비해 대단히 작다


 향고래는 4년마다 한배에 1마리를 낳는데 임신기간은 15-16개월이다. 세계 각지의 바다에 분포한다.  신기하게도 남녀가 유별한 동물이라 암컷은 암컷끼리, 수컷은 수컷끼리 무리를 짓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수컷은 나이가 들수록 무리가 점점 갈라지다가 결국에는 단독 생활을 한다고 한다. 향고래 독거노인설! 그래서 그런가 가끔 향고래 사진을 보면 눈이 꽤나 슬퍼 보인다. (한낱 개인의 감상일 뿐 ) 어쨌든 향고래는 여전히 생태 자체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거의 없는 종이기도 하다.   향고래는 유대감이 깊어 동료 중 1마리만 낙오되어도 무리 전체가 기다려 준다. 덕분에 얕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동료를 돕다 무리 전체가 대참사를 당하는 일도 있다.  향유고래가 기형 돌고래를 자기 무리에 입양시킨 동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 잠수왕 향고래, 초능력 대장!

 향고래는 포유류 주제에 무려 1시간 반 동안 잠수할 수 있다.   향고래 몸의 구조는 깊이 잠수해도 견딜 수 있어서 수심 3,000m까지 잠수할 수 있다. ( 뱃속의 먹이를 분석한 결과 3000미터 수심에 사는 생명체들이 있었다 )


 그렇기 때문에 1,000m 수심의 바다에서 해저 케이블로 장난치다 감겨서 익사하는 사례 역시 심심치 않게 보고되고 있다. 사실 수심 200m가 넘어가면 빛이 거의 없어지는 세계가 되는데다 엄청난 수압을 견뎌야 하는 걸 감안한다면 정말 놀라운 능력이다.  포유동물 중 이 정도로 깊이 잠수할 수 있는 건 향고래 뿐이다.  




이렇게 잠수를 할 수 있는 까닭은, 폐의 크기가 작고 잠수 중에는 거의 공기를 흡입하지 않아서 강한 수압에도 견딜 수 있기 때문이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면 이유를 안다) 또한 보통 포유류와는 달리 헤모글로빈보단 미오글로빈을 이용한다.  육상동물에 비해 10배 가까이 미오글로빈 함유량이 높은 덕분에 근육에 산소를 다량으로 저장해 둘 수 있는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다. 


 또한 머리 부분에 있는 경뇌유라고 부르는 기관은 냉각되면 고체화하여 비중이 높아지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물을 한껏 빨아들여 이 기름통을 식혀 고체로 만들면 비중이 커져 무게추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잠수병의 발병 원인은 물 속에서 올라올 때 급격한 압력 저하로 혈액 속의 질소가 기포화하는 것인데 향유고래는 이를 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초음파를 사용해서 먹이를 스턴시키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능력치는 거의 초능력급



■ 현존하는 바다 최강의 포식자

 이런 여러가지 스펙을 바탕으로 향고래는 바다 최강의 포식자라는 칭호를 얻었는데, 주 먹잇감은 대개 물고기나 오징어인데, 오징어도 그냥 오징어가 아니라 덩치에 걸맞게 대왕오징어이다.  잡힌 향고래들을 해부해보면 몸에는 엄청난 크기의 빨판 흔적이 남아있으며,  뱃속에는 소화가 덜 된 대왕오징어의 시체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중에는 크기가 15m를 넘는 대왕오징어도 있었다고 한다.   물고기도 평범한 물고기를 먹는것이 아니다.  죽은 향고래 위를 조사하던 중, 위 속에서 5m 백상아리가 나온 적이 있다. 백상아리. 바다를 공포로 몰고간 공포의 대명사 죠스의 그 상어다. 죠스 마저도 향고래 앞에서는 먹잇감! 심지어 청새치를 그대로 꿀꺽해서 위 속에 청새치 주둥이 끝이 그대로 박힌채 발견된 향고래도 있다.  


얘도 향유고래한테는 그냥 밥, 고래밥임
 [ 공포의 대명사 죠스, 백상아리도 향고래 앞에선 좆밥 ]


 체중도 체중인데 향고래는 무리를 지어 살기 까지 하기 때문에, 사실상 바다에서 향고래를 건드릴 생물은 없다. 심지어 바다의 최강자 범고래조차도 무리를 지어서 향유고래 무리 중의 단 한마리를 집중적으로 다구리를 쳐도 겨우 될까말까한 수준이다. ( 나중에 수중도감에서 범고래에 대해 자세히 다룰텐데, 범고래의 능력을 알면 향고래의 어마어마함이 느껴진다 )  그렇기 때문에 향고래의 천적이라 하면 인간만이 있을 뿐. 


 
■ 인간의 향고래 사냥

 예로부터 향고래는 다양한 쓰임새 때문에 인간들이 노려왔는데, 특히 양질의 지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18~20세기에 걸쳐 포경산업의 주 타겟이 되어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특히 1946~1980년에 이르는 40년 간 77만 마리에 달하는 향유고래가 포획되어 종의 존속이 위협받게 되었으며,  1985년에 세계포경기구에서 포획을 전면 금지하였다. 현재는 아조레스 제도와 마데이라 제도에서만 약간의 포경이 행해진다.  이렇게 남획한 결과 19세기 초 150만 마리가 전 세계의 해역에 서식하고 있었던 것이 현재는 그 수가 많이 줄었다.  그래도 수십 년 간의 보호에 힘입어 멸종위기에서는 이제 벗어났다. 국내에선 2004년 동해안에서 70년만에 발견된 바 있다.


 그럼에도 향고래가 흉폭하다고 소문난 이유는 포경 할 때, 다른 종은 거의 다 도망가는데 비해 향유고래는 공격을 한다. 이 때문에 박살난 포경선도 꽤 된다고. 하지만 작살에 폭탄을 장착하는 현재의 포경선에게는 답이 없다.  향고래가 포경선을 공격한다는 것은 사실 완전한 오해다.  향유고래가 포경선을 공격한 사건은 한건 한건이 포경 역사에 남을 정도로 드물고, 공격 자체도 포경선을 동료 향유고래로 착각했거나(향유고래는 수컷 간의 짝짓기 싸움에서 턱이 부러지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심하게 싸운다) 하는 경우이지 포경선이나 포경 보트를 침몰시킬 생각으로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포경선 애식스호 생존자들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한 논픽션 '바다 한가운데에서(N. 필브릭 저)'에 포경의 과정과 향고래의 습성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으니 참고바란다.  창작물에서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왠지 포악한 바다괴물 컨셉.   소설 해저 2만리에서도 난데없이 밍크고래를 습격하는 악당으로 등장, 이에 분노한 정의의 네모 함장에게 수십 마리가 떼로 도륙당했다.  


 참고로 이와 같이 괴물 취급을 받는 이유는 수산산업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요즘엔 어선 엔진소리를 구별하여 깊게 잠수하여 대왕오징어를 먹는 대신 그물이나 주낙을 치는 소리가 들리면 그 배를 따라가다 물고기가 걸리면 물고기만 빼먹는다고 한다.  알래스카에선 이때문에 대구 어획량이 크게 줄었는데 가짜 엔진소리까지 틀어주며 어민들이 대항했지만 몇천만 달러가 넘는 군용 신호 연산방식 제거 시스템 SAPS보다 훨씬 정교한 향유고래의 귀를 속이기는 어렵다.  반대로 너무 정교한 이 귀 때문에 해군의 액티브 소나에 의해 역으로 스턴이 걸려 해변으로 떠밀려오는 경우가 많은데, 바닷가로 떠밀려온 고래 무리들의 대부분이 바로 이 액티브 소나에 당한 것이다.


 이 포스팅에서 바다의 최강 포식자라고 소개를 했지만 범고래와 막상막하, 하지만 스펙 상, 일대일로는 그 강력한 범고래도 함부로 향유고래를 건드릴 수 없으니 바다의 최강자 타이틀은 조심스레 향유고래에게 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많은 사람들이 향고래와 교감을 하려고 애를 쓰는데, 범고래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교감은 이뤄진 상태. 언젠가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바다는 알면 알 수록 신기하고 재밌다.


인간과 교감하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짧은 영상이니 잠깐 감상해보자.




프리다이빙으로 향유고래 새끼와 교감하는 장면

역시 짧은 영상이다. 꼭 보자





눈빛이 인상적이다.